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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50년 전에 저희 아버지는 55세였다. 저는 지금 71세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은 크게 변했다. 세계도 변했다. 그런데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런 인류애적인 사랑의 마음”이라며 “인간의 마음은 항상 무언가를 찾고 있다. 세속주의ㆍ공산주의ㆍ물질주의와 섹스나 마약도 그걸 충족시킬 수가 없다. 인간이 찾는 영원함의 공간을 채울 수가 없다. 그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 채워진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북한 선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버지는 북한을 두 번 방문했다. 저는 네 번 방문했다. 북한에서 구호활동도 했다. 치과 치료도 하고, 지방의 병원에 전기도 공급하고 음식도 나누었다. 북한의 기독교인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의 어려운 삶을 알고 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19 사태로 인해 지난 2년간 북한을 향해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북한의 문이 열리길 바란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일할 준비가 돼 있다.”
1973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김장환 목사가 통역하고 있다. 중앙포토
50주년 기념대회 대표대회장을 맡은 오정현 목사는 “1907년에 평양 부흥이 있었다. 그게 일제 36년의 엄혹한 시기를 지나는 힘이 됐다. 1973년에 있었던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는 제2의 부흥이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부흥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번 대회의 의미를 짚었다.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김장환 목사가 전도대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중앙포토